주인공 슈이치는 대학 시절 친구들, 그리고 사촌 형과 함께 산속의 지하 건축물을 찾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길 잃은 가족 세 명과 함께 지하 건축물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다음 날 새벽녘, 지진이 발생해 출입문이 커다란 바위로 막히는데...

방주

한국에 번역되어 출간되는 일본 소설의 절반은 추리소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하루키를 제외하면 내가 읽는 일본 소설은 대부분 추리소설이긴 하다. 이름을 댄다면 요코미조 세이지가 가장 앞에 오고, 그 뒤로 히가시노 게이고, 미나토 가나에, 기시 유스케, 미야베 미유키가 뒤따른다.

이전에 읽은 어떤 책에 의하면 추리소설은 크게 세 가지 분류로 나뉜다고 한다. 누가 했는지(후더닛), 어떻게 했는지(하우더닛), 왜 했는지(와이더닛). 그리고 대부분의 장르가 요새 그런 것처럼 추리 소설의 하위 세 장르 역시 칼로 자르듯 깔끔하게 나뉘지는 않는다. 어떤 소설은 누가 어떻게 했는지에 중점을 두고, 또 어떤 소설은 누가 왜 했는지에 중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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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는 후더닛인 척을 하는 와이더닛이다. 그런데 그 결말이 책의 띠지가 말하는 것처럼 '극한의 뇌정지 미친 반전'이기는 하다. 이것이 좋다는 것인지 아닌지는 뒤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일본 추리 소설(혹은 신본격)의 '기계적인' 면모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독자가 주어진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낼 수 있을지 겨루고자 하는 것만 같다. 내가 소설을 읽는 건지 스도쿠를 풀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이다. 게다가 이런 변태적인 작가들은 일단 어떤 트릭이 수행 가능하기만 하면 현실적인지를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자연히 인물의 감정이나 서사는 뒷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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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도 그런 '일본 추리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학 동아리 출신의 친구 여섯과 사촌 형 하나, 그리고 아들 하나 딸린 가족 이렇게 열 명이 산 아래의 알 수 없는 건축물에 방문했다가 지진이 일어나 갇히고 만다. 이들은 왜 산 아래의 건축물에 방문했을까. 왜 이들은 그 건축물에서 하룻밤을 보냈을까. 왜 지진이 일어났을까. 모든 질문에 대한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작가가 클로즈드 서클을 쓰고 싶었으니까. 그 뿐이다.

신본격의 문법이 익숙해지면 특정 조건들로 범인을 때려맞출 수 있다. 나는 특정 장면 덕분에 비교적 이른 시점에 범인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의 동기는 끝의 끝까지 가서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출판사는 아주 자신있게 띠지에 '극한의 뇌정지 미친 반전'이라는 표현을 써놓지 않았나 싶다. 미친 반전이기는 하다. 그러나 적절한 서사와 인물 묘사 없는 반전은 싸구려에 불과하다. 잠깐 '아하, 그런 거구나' 하고 며칠 지나면 잊고 말 그런 싸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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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계적일 수 없으므로, 사실 기계적 추리소설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저 기계적인 추리만 남을 뿐.